CUSTOMERSUPPORT

고객지원

제품 Q&A

한강 얼음의 믿음새 창 열림
조시훈 2026-07-24

1) 짚신에 대나무쪽을 댄 대발서구식의 스케이트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 전통 스케이트는 짚신 바닥에 대나무 쪽을 댄 ‘대발’이었다. 겨울이면 얼음이 언 한강이나 대동강의 양기슭에 대발막을 세우고 대발과 대발막대라는 스틱을 빌어 빙상도강(氷上渡江)을 했던 것이다. 대발 전에는 '위는 상 같고 아래는 배'같은 설마(雪馬)가 있었다. 설마는 후에 썰매로 바뀌었다. 고로쇠썰매라고 불리는 강원도지방의 대나무 썰매는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가 지지대 역할을 하는 창으로 호랑이를 꿰뚫어 죽이는 형태의 사냥 도구였다. 어린 시절 추억 속 썰매는 나무썰매다. 사람이 앉을 만한 판자 양 옆으로 각목을 대고, 그 아래 쇠붙이를 대서 날을 만든다. 과거에는 철사, 못, 식칼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썰매 위에 앉아 쇠꼬챙이나, 쇠꼬챙이를 송곳처럼 박아넣은 나무 손잡이로 얼음을 찍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2018년 1월, 구청이 논현포대 근린공원 유수지에 조성한 썰매장. 옛적에는 나무토막에 철사를 부착해 썰매를 만들고, 논두렁 등을 찾아 다니며 썰매를 탔다.2) 스케이트 한국에 들어오다우리나라에 빙판 위를 자유자재로 지칠 수 있는 서구식 스케이트 '빙족희(氷足戱)'가 들어온 것은 18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에는 스케이트를 구입하기 힘들었으므로 목판에 칼이나 철사 등을 붙이고 그 목판을 신 밑에 끈으로 달아서 스케이트의 한 형태로 놀이를 즐겼다.이것은 스케이트가 아니라 빙상의 유희 및 오락의 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스케이트를 대중에게 보급한 사람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신부들이었으며 미국, 유럽 등지에서 유학하던 한국인이 대중 앞에 선보였다.경복궁 향원정 못 위에서 '얼음 위를 나는 기술'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던 고종과 명성황후를 위해 외국인들이 시연을 했다. 영국의 왕립 지리학회 최초 여성 회원이었으며, 1894년~1897년 사이 한국에 머물렀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과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서 경복궁 향원정에서 열린 스케이트 파티에 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 초대를 받아 갔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녀뿐 아니라 조선에 있는 전체 외국인들이 모였으며, 왕과 왕비는 유럽인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친절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내외의 법도 때문에 향원정에 발을 내리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한 채 스케이팅하는 모습을 숨어 구경 하였으며, 남녀가 사당패와 색주가들처럼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모양에 대해서는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정리한 '한국의 피겨스케이팅 100년사'는 남녀가 스케이트를 타며 손을 잡았다 놓았다 재주를 부리는 것을 황후가 불쾌해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런 기록들로 미루어보아 서구의 피겨 스케이팅이 처음으로 조선에 선을 보인 것은 1890년대 중반으로 추측된다.한국인으로서는 1905년 질레트의 스케이트를 현동순이 15전에 구입하여 삼청동 溝州에서 얼음을 지쳤다는 동아일보의 기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스케이트를 구입했는데 사용법을 몰라 1905년 미국 선교사 질레트에게 물어 얼음을 치쳤다고 이길용 기자가 동아일보에 전하고 있다. 당시의 스케이트는 앞뒤가 짤막하고, 보통의 구두에 나사못으로 조이는 것으로 氷足戱라고 불려졌다. 빙상을 최초로 소개한 학교는 한성고등학교(현 경기고등학교)와 휘문의숙이었다. 이들 학교는 미국으로부터 스케이트를 직접 수입하여 연습을 시켰다. 1912년에는 용산에 氷滑場이 개장되어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이화학당에서는 겨울이면 운동장에 물을 뿌리고 얼려 사용하기도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얼어붙은 한강이나 대동강에서 펼쳐진 스케이트 경기는 3만여 명이 구경하러 몰릴 만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대부분 스피드 경기에 국한돼 있었다.최초의 빙상대회는 1908년 2월 1일 대동강에서 일본인끼리 연 빙상 운동회가 효시이다. 그 후 1912년 경성일보사가 용산부근에 빙활장을 만들고 무료로 개방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트장이다. 또한 1915년에는 중국의 빙상단을 초청하여 의주농업학교 부근의 경빙장에서 스케이트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최초의 국제빙상 경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케이트가 국민에게 정상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이후라 할 수 있다. 1921년 12월에 조선체육협회가 명동부근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개방함으로써 일반인의 스케이트에 대한 관심은 점차적으로 고조되어 갔으며 스케이트의 흥미 및 기술의 보급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23년 대동강에서 시작된 전조선 빙상경기대회, 1924년 2월 10일 제물포청년회가 송림리 스케이트장에서 연 제1회 인천빙상경기대회, 1935년에 한강에서 개최된 조선여자빙상경기대회, 1933년의 전조선 중등학교빙상대회 등 해가 갈수록 많은 대회가 개최되었다. 최초의 동호인 모임인 '피규어스케잇구락부'가 결성된 것은 1924년 겨울 창경원에서였다. 피겨 종목이 채택된 런던 동계올림픽 이후 16년 뒤의 일이나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 때마다 시범 경기를 펼치며 보급에 나섰다.스케이트를 즐긴 덕수궁 연못은 정관헌 앞에 위치한 것으로 태평로가 확장되기 전 덕수궁의 연못은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커 많은 사람이 애용했다고 전해진다.3) 피겨스케이팅피겨 스케이팅은 빙판이나 빙상장에서 음악에 맞춰 스케이팅 기술을 선보이는 빙상 경기다. 피겨(figure)라는 명칭은 빙판 위에서 도형을 그리듯이 움직이는 것에서 따왔다. 유럽과 북미에서 남녀가 빙판 위에서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며 노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1742년에는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피겨 스케이팅 클럽이 설립됐다. 아이스 스케이트의 날로 빙판에 그리는 궤적을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 후 아이스 스케이팅과 발레, 사교댄스를 결합한 현대의 피겨 스케이팅이 탄생했다. 전자는 지금은 사라진 컴펄서리 피겨(compulsory figures)이며, 후자는 프리 스케이팅으로 발전했다.피겨 스케이팅이 최초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하계 올림픽인 1908런던 올림픽이며, 최초의 동계올림픽인 1924샤모니동계올림픽부터는 남자 싱글, 여자 싱글, 페어 세 종목이 동계 올림픽에서 진행되었다. 아이스댄스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은 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 1976 인스브루크동계올림픽이며, 단체전이 도입된 것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이다.1920년대 중반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클럽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피겨 스케이팅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1925년 전조선 빙상대회에서 스피드 경기 중반 피겨 시범경기가 열리면서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국내 공식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1929년 컴펄서리 종목(빙판 위에 일정한 도형을 그리는 경기)이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20년이 지난 1950년대에 외국에서 온 선수의 시범에 모두가 놀랐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한국 피겨의 수준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선수도 남자 선수밖에 없어, 페어스케이팅도 남자 선수끼리 훈련하고 경기를 치르는 상황일 만큼 저변도 좁았다.한국 피겨스케이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전신인 조선빙상경기협회가 발족하면서부터다. 한국보다 스케이트 도입이 빨랐던 중국 만주나 베이징 등지에서 연습하던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여자 선수도 생겨났다.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A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표팀이 태극기를 들고 인사하고 있다. 출처: SBS 뉴스 4) 피겨 스케이터만주에서 태어나 스케이트를 탔던 신정자가 한국 최초의 피겨 스케이터로 알려져 있으며, 홍용명이 1948년 한국의 첫 피겨 대회에서 우승해 최초의 여자 챔피언으로 이름을 남기면서 피겨스케이팅은 대중의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홍용명은 늘씬한 키에 돋보이는 외모로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940~50년대 초 홍용명이 창경원이나 덕수궁에 연습을 하러 나타나면 그에게 스케이트를 신겨주고 싶어하는 남학생들이 줄을 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연습을 할 때면 구름같이 모여든 구경꾼 때문에 활주할 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1950년대 열린 경기에서는 페어스케이팅 시범 경기를 준비하던 남녀 선수가 풍기문란으로 연행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한국 피겨는 1960년대 한 단계 성장했다.1964년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 개장되면서 선수들이 배출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 돌아온 코치들 덕에 기술적으로도 도약했다. 동계올림픽 도전도 이때 시작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이광영과 김혜경, 이현주가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올림픽 무대에 첫 발을 디뎠다.(자료출처: ‘金연아’로 보는 한국 피겨 100년. KBS 2010.02.26 )​5) 페어와 아이스댄싱페어는 여자와 남자 선수가 짝을 이뤄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는 종목으로 190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선보였다. 남녀가 똑같은 동작을 하는 게 기본이며 파트너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리프트 동작이 추가돼 아크로바틱한 연기를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또 남자 선수가 파트너의 허리를 잡거나 손을 잡고 던져서 점프 동작을 돕는 '드로우 점프'와 남자 선수의 손을 잡은 여자 선수가 얼음판과 거의 수평이 되게 누워서 회전하는 '데스 스파이럴'은 팬들에게 짜릿한 재미를 선사한다. 반면 아이스댄싱은 싱글과 페어에 보다 뒤늦은 1952년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1976년부터 올림픽 종목에 포함됐다.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볼룸댄스라고 이해하면 된다. 남녀가 파트너를 이루는 게 페어와 비슷하지만 파트너를 어깨 높이 이상 들어 올릴 수 없고, 연기하는 동안 남녀가 양팔 길이 이상으로 떨어져도 안되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더불어 아이스댄싱은 컴펄서리 댄스-오리지널 댄스-프리 댄스 3가지 세부 종목으로 구성됐다. 특히 규정 음악을 미리 지정해 왈츠, 탱고, 룸바 등 같은 템포의 음악으로 경쟁하는 것도 페어와 차이점이다.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트 페어 금메달을 수상한 일본의 미우라 리쿠-기하라 류이치.6) 김연아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선수.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피겨 스케이팅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고, 동시에 여자 싱글 선수 최초로 커리어 골든 그랜드 슬램을 완성했다. 이후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은퇴 무대인 202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추가 획득했다. 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용산 빙상장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연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피겨는 국민들에게서 더욱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선수층이 조금씩 두터워졌다. 2010년 에듀모아에서 초등학생 6,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김연아가 48%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스포츠 인재가 피겨 종목으로 유입되는데에 영향력이 있었다. 이때 유입된 피겨 선수 세대를 '연아키즈'라고 부른다. 2018년 이후, 연아키즈들이 성장하여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재는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싱글 티켓을 매년 최소 2장은 확보하는 저력이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어렵지 않게 김연아의 현역 시절 영상을 볼 수 있어 지금도 김연아의 영향을 받아 유망한 선수들이 유입되고 있다. 실제로 초등학생 중에 김연아를 보고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연아의 팬들 중 어린 팬도 많다. 이렇듯 영향력이 여전히 큰 관계로 2020년 스포츠동아가 스포츠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해외 해설진 역시 전후 사정을 잘 알아서 한국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출전하면 항상 김연아가 물꼬를 텄다는 해설을 덧붙인다.​7) 피겨스케이팅 배경음악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2014~2015년 시즌부터 피겨 경기 주제곡에 가사가 나올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전까지는 아이스댄스를 빼곤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연주곡만 쓸 수 있었다. 올림픽에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첫 번째 무대가 되어 올림픽 피겨 모든 종목에 가사가 들어간 다양한 음악이 나오게 됐다. ​8) 중랑천 스케이트장국민학교 시절 우리 학교엔 빙상부가 있었다. 덕분에 빙상부에 들어가 스케이트를 배우는 호사를 누렸다. 중랑교 바로 밑 얼음판에서 탔는데 지금은 상계동 쪽에 야외스케이트장이 생긴 듯하다.#스케이트 #피겨스케이팅 #피겨스케이트페어#김연아 #미우라리쿠 #기하라류이치#조선과 이웃 나라들 #한국의피겨스케이팅100년사

0건의 글이 있습니다.
닫기